천주교 성지 여산성당과 숲정이 순교 성지
여산성당은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여산리 196번지에 있는 전주교구 소속의 가톨릭 천주교회로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지역 순교 역사와 성지를 기념하기 위해 여산 숲정이 순교성지에 건립하였다. 여산성당은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과 망성면 내촌리 일부와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일부를 관할하고 있으며, 주보 성인은 순교자의 모후이다. 여산 숲정이 순교성지 맞은편에 위치해 있으며 여산성당 소속 공소는 성치골 공소, 시오목 공소, 삭골 공소, 마전리 공소, 두화 공소, 신근리 공소 등 6곳이 있다.
여산성당 돌무덤
여산면에 천주교가 전래된 것은 천주교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이주해온 신자들이 모여살면서부터였고 1868년 무진박해 때에는 이곳 신앙촌에 거주하는 신자 26명이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고산, 진산, 금산 등 지역에서 붙잡힌 김성첨[토마스] 가족 6명을 포함하여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여산 동헌으로 끌려와 동헌 앞 백지사(白紙死) 터, 감옥, 숲정이, 장터 등지에서 백지사형과 참수형, 교수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1951년 천주교 전주교구는 여산 지역 순교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여산 순교 지역을 제2 성지로 지정하고, 천주교 본당 건립을 추진하였다. 1957년 나바위성당에서 분리하여 1958년 10월 21일 여산 숲정이 순교성지 안에 여산성당이 건립되었다. 여산성당은 1959년 1월 17일 본당으로 승격하였고, 초대 신부로 권영균[안토니오] 신부가 부임하였다. 여산성당은 건립된 뒤로 성당 증개축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성당 주변 순교 성지 개발도 함께 추진되었다. 1982년 여산 숲정이 순교성지 제대 공사가 완료되었고, 예수성심상 등이 건립되었다. 1983년에는 옛 여산 동헌 백지사터를 매입하는 등 개발이 이어서 추진되었다. 지금도 여산성당과 여산 숲정이 순교성지는 순례자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방문하고 있다. <향토문화전자대전 두산백과 참조>
여산 숲정이 순교성지
여산 숲정이 순교 성지는 병인박해 때3천주교도들이 처형된 곳이다. 1855년 흥선대원군의 통상수교 거부 정책과 천주교 말살 정책으로 시작된 박해는 1868년에 이르러 가장 심했다.
호남의 관문으로 일찍이 천주교가 전해진 이곳 여산에는 수많은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1868년부터 천주교도들이 체포되어 여산 숲정이,여산동헌 앞 백지사 터 등에서 23명이 순교하였다. 알려지지 않은 천주교도를 포함하면 그 숫자는 훨씬 더 많아 전주 숲정이 순교 성지 다음으로 순교자가 많다고 한다. 주변에 여산 성지,백지사 터,여산동헌과 척화비 등이 있어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 곳이다. 여산 숲정이 순교 성지는 전라북도 기념물 제125호이다.
Supjeongi Martyrs' Shrine
Jeollabuk-do Monument No. 125
This site is where Korean Catholic believers were martyred during the great persecution of 1866-1871. The persecution of Catholics was led by Heungseon Daewongun (1820-1898), prince regent and de facto ruler of Joseon during the early period of the reign of King Gojong (r. 1863-1907). As he felt threatened by the invasive approach of Western countries, he prohibited foreign trade and persecuted Catholics in Korea en masse. As a result, the worst persecution of Catholics in the history of Korea began in 1866 and continued to
1871, with the peak in 1868. Catholicism had spread early in the Yeosan area and there were many believers' communities. It is said that believers had been captured since 1868 and, among them, 23 were persecuted at this site. At the nearby Magistrate's Office of Yeosan, there is an anti-appeasement stele erected on the order of Heungseon Daewongun in order to warn people against opening Joseon to Western pow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