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향교 濟州鄕校 Jejuhyanggyo Confucian School
제주에서의 짧은 휴가를 마치고 공항으로 가는중 잠시 제주향교에 들렸다. 예상대로 제주향교는 코로나19 사회적거리두기의 정부지침에 따라 휴관중이었다. 제주까지 와서 그냥 돌아서기에는 아쉬움이 많아 협조를 구해볼까 하다가 시간적인 여유도 많지 않아 담 넘어로 보이는 명륜당과 대성전만 잠시 촬영했다. 2020년 12월 29일
제주향교는 1392년(大祖 1) 제주성내 교동(校洞),지금의 원정로에 창건된 후 여러 차례 옮겨졌으며,1827년(純祖 27) 현 위치로 옮겨 오늘에 이른다. 향교내에는 대성전(大成殿) • 계성사(啓聖轉) . 명륜당(明倫堂)등의 건물이 있으며 본래는 동무(東應) . 서무(西應) . 동재(東齋) . 서재(西齋)도 있었다. 대성전은 문묘(文廟)라고도 하며 공자위패(孔구位牌)를 정위(正位)로 하여 안자(顔子) • 증자(會子) • 자사(구思) • 맹자(孟구)의 5성인(五聖人)과 공문10철(孔門十哲) .송조육현(宋朝A賢) • 한국18현(韓國+ 八賢)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특히 다른 향교와 달리 계성사가 1854년(哲宗 5) 창건되었는데 여기에는 5성(五聖)의 아버지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명륜당은 인재를 양성하는 강당(講1)으로 주로 사서오경(四書五經)을 가르쳤다. 향교에서는 봄 . 가을에 석전대제(釋莫大S)를 봉행(奉行)하고,매월 1일 . I5일에는 분향례(炎香禮)를 봉행한다. 향교는 유현(儒賢)의 위패를 봉안하여 배향하고,지방민의 교육과 교화의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대성전은 문묘(文廟)의 정전(正殿)으로서 공부자(孔夫子)의 위패를 모시는 전각이다. 공부자의 위패를 중앙 정위(正位)로 하여 4성(聖)과 공부자의 제자 10철(哲), 송조육현(宋朝六賢), 우리나라 18현(賢)의 위패가 동서로 위차봉안(位次奉安)되어 있으며, 대성전(大成殿)과 동무(東무)·서무(西무)는 공자를 비롯한 유가 성현들의 위패(位牌)를 모셔놓고 1년에 2회 정기적으로 석전(釋奠)을 지낸다. 이 건물과 공간을 통칭해 문묘(文廟)라 한다. 전국의 모든 향교(鄕校)에도 문묘를 갖추고 있으며, 석전대제를 모시고 있다.
대성전에서는 매월 음력 초하루와 보름 오전 10시에 분향례(焚香禮)을 하고 있으며,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음력 2월·8월]에 걸쳐 대규모의 제례(祭禮)를 거행하는데, 이것을 석전(釋奠)이라고 한다.
명륜당은 유학(儒學)을 강학(講學)하여 인재(人才)를 양성하는 강당(講堂)이다.
대성문(1974년에 신축)을 들어서면 바로 좌측에 명륜당이 있다. 제주향교 명륜당은 1969년에 향교 재단에서 재원(財源)을 마련하여 1970년에 준공되었는데 옛 위치인 곳에는 제주중학교가 자리잡고 있는 관계로 원래의 위치가 아닌 대성전 우측의 공지에 철근콘크리트조로 신축된 것이다. 명륜당은 제향(祭享)공간인 대성전 그리고 동무,서무와 함께 향교의 중추적 기능을 담당하는 건물로 옛 동재(東齋), 서재(西齋)와 더불어 그 일곽(一廓)은 교육공간 영역(領域)의 중심 건물이다.
현재는 좌학우묘의 배치 형태지만 명륜당이 원래 제주중학교 자리에 있었으므로 제주향교도 명륜당을 앞에두는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구조였다.
우측에 보이는 건물은 행단이다. 전면 3칸, 2층 합각지붕의 소규모 건물 행단은 송대(宋代) 이전에는 그 자리에 대성전(大成殿)이 있었지만 천성(天聖) 2년(1024)에 대성전을 북(北)으로 옮겨 재건(再建)하게 하였다. 이후 그 장소에 단(壇)을 만들고 은행(銀杏)나무를 심어 공자가 학문(學問)을 강의하던 곳을 기념하였다고 한다. "장자(莊子) · 어부(漁父)」에 의하면 「공자가 종추(綜推)의 숲속에서 거닐 때 쉬면서 행단(杏壇) 위에 앉아 제자(弟子)의 글을 읽고 노래를 불렀다."는 글이 있다.